2019. 6. 6. 06:36ㆍ밴드총정리
오늘은 열반을 칭하는 Nirvana (너바나) 총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네이밍 하나 죽입니다. 아무튼 간지 나는 인간들은 태생이 그런 것 같아요. 생긴 거나 이름이나 타고난 것 같음.
1967년 2월 20일 미국 워싱턴 에버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는 웨이트레스 웬디 엘리자베쓰와 자동차 정비공 도날드 코베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웬디와 도날드는 1965년 7월 31일 아이다호에서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가 아홉 살 때 이혼을 하며 그 이혼은 아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커트 코베인이었습니다.
그가 베이스를 연주하는 크리스 노보셀릭을 만난 건 에버딘 고등학교였습니다. 그 둘은 멜빈스라는 밴드의 합주실을 같이 쓰면서 친해졌고 커트는 크리스에게 밴드를 시작하자라는 권유를 했으나 좀처럼 답을 하지 않습니다. 코베인은 그의 밴드 Fecal Matter의 데모 테이프도 건네줬죠.
2년이 지난 후 마침내 크리스는 이 데모태잎을 들었고 드럼을 연주는 Bob McFadden을 영입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한 달 후 공중분해되고 1987년 커트와 크리스는 Aaron Burkhard를 드러머 자리에 앉혀 코베인의 Fecal Matter라는 밴드의 곡들을 연주합니다.
그들은 밴드 이름을 새로 짓는 과정에 "Skid Row, Ted Ed Fred" 등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며 마침내 Nirvana라는 이름으로 정해집니다. 만약 스키드 로우라고 했다면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겠네요. 그 세바스찬 바하의 '스키드로우'요. 커트와 크리스가 이사를 가면서 드러머 Burkhard와 연락이 끊겨 결국 그들은 멜빈스의 드러머 Dale Crover와 함께 합주를 합니다.
그 후 여러 드러머를 거칩니다. 사실 드러머 찾기는 세계 어딜 가도 힘듭니다. 기타리스트가 제일 많고 그다음 베이시스트 마지막으로 드러머 구하기가 엄청 힘듭니다. 찾는 밴드들도 많으니 한 드러머가 밴드 두, 세 개는 기본으로 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밴드의 모습을 갖춘 너바나는 첫 번째 곡을 녹음하는데 Shocking Blues의 Love Buzz로 합니다.
그다음은 너바나의 리메이크 버전
그리고 그들은 대망의 첫 데뷔 앨범 Bleach를 Jack Endino와 함께 작업합니다.
블리치는 Sub Pop을 통해 1989년 6월 15일 발매되었으며 시애틀의 리시프로컬 리코딩 스튜디오에서 1988년 12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는 반응이 없었으나 평론가들에게 알려졌으며 추후 게펜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어 재평가받습니다. 재발매된 블리치는 빌보드 차트 89로 데뷔했으며 영국, 호주 앨범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미국에서만 1,900,000장을 팔았고 이는 Sub Pop에서 제일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이 됩니다. 블리치는 또한 롤링 스톤 메거진에서 뽑은 최고의 그런지 앨범 50선에서 13위에 랭크됩니다.
첫 번째 싱글 러브 버즈
두 번째 싱글 Blew
블리치는 당시 시애틀 인디락신 스타 머드하니와 멜빈스의 영향과 블랙 사바쓰와 같은 밴드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은 사운드라고 합니다. 블랙사바쓰 같은 경우에는 메탈은 물론이고 그런지, 펑크, 스토너 락, 슬러지 같은 아주 매니악한 음악에도 아주 많은 영향을 준 밴드로서 락 음악계에는 아주 중요한 밴드라 할 수 있습니다.
Black Sabbath - Paranoid
그리고 Bleach 앨범의 녹음비가 약 600 달러밖에 들지 않았다는 걸로 유명하죠? 정확하게 $606.17 이 들었다고 하네요.
블리치를 발매하고 투어를 돌기 시작했는데 칼리지 라디오에서 아주 좋아하는 앨범이 되었습니다. 한편 Sub Pop 레이블은 블리치 홍보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이에 커트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프로듀서 Steve Fisk와 ep Blew를 녹음합니다.
총 4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Been a Son을 듣겠습니다.
이후 드러머는 또 밴드에서 탈퇴하고 (너무 많은 드러머가 거쳐갔기에 이름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결국 머드허니 드러머 Dan Peters 와 Sliver 를 녹음합니다. 너바나는 머드허니 드러머 댄에게 소닉 유스 투어를 위해 세션을 부탁합니다.
1990년 9월 멜빈스의 버즈 오즈본은 밴드에게 데이브 그롤을 소개해줍니다. 역사적 만남으로 기록되는 순간.
네, 맞습니다. Foo Fighters의 리더...
이 앨범은 푸 파이터스의 데뷔앨범이며 여기 보이는 베이시스트는 이모밴드 Sunny Day Real Estate 의 베이스였습니다.
인디레이블의 한계에 싫증을 느낀 커트는 메이저 레이블 계약에 힘씁니다. 그는 소닉 유스의 킴 고든의 추천을 통해 DGC 레코드와 1990년 계약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스터피스 Nevermind를 위해 프로듀서/가비지 드러머 Butch Vig과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갑니다.
너바나의 두 번째 앨범이며 9월 24일 DGC Records 를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데이브 그롤이 참여한 첫번째 앨범입니다. 얼마나 대단했냐면 빌보드앨범차트1위를 하고 있던 마이클잭슨의 Dangerous 밀어낼정도였습니다. Smells Like Teen Spririt 으로 전세계 음악트렌딩을 바꿔놓고 그 후에 Come As You Are, Lithium 그리고 In Bloom 이라는 수퍼싱글을 연이어 내놓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천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 삼천만장 이상을 팔았습니다.
첫번째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
두번째 싱글 Come as You Are
세 번째 싱글 Lithium
네 번째 싱글 In Bloom
아직도 그때의 시간들이 영상처럼 지나가네요. 솔직히 90년대 키드 중에 너바나의 영향을 피해 간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 앨범의 엄청난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으로 하루아침에 커트의 인생이 바뀌어버립니다. 그다음 앨범에 대한 부담이었을까요? 엄청난 구설수와 소문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레이블은 1992년에 맞춰 앨범 발매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컴필레이션 앨범인 Incesticide를 발매하기 이릅니다.
이 앨범은 B-side와 데모, 커버 등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1992년 12월 14일에 발매되었고 컴필레이션 앨범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39위를 기록합니다. 커버는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던 커트의 그림입니다.
1993년 2월 너바나는 The Jesus Lizard와 스플릿 앨범 Puss/Oh, the Guilt를 인디레이블 Touch & Go를 통해 발매합니다. 한 편 너바나는 다음 앨범의 프로듀서로 Steve Albini를 선택합니다.
1993년 9월 21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대했던 너바나의 마지막 앨범 In Utero 가 발매됩니다. 네버마인드와 다른 사운드 를 내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고 네버마인드의 그늘에서 벗어납니다. 전 세계적으로 천오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립니다.
첫 번째 싱글 Heart-Shaped Box
두 번째 싱글 All Apologies
세 번째 싱글
네 번째 싱글 Pennyroyal Tea
앨범 투어 때는 세션 기타리스트로 펑크밴드 Germs (점스)의 기타리스트였던 Pat Smear를 영입합니다. 그는 MTV 언플러그드 공연에도 얼굴을 비칩니다. 그는 추후 드러머 데이브 그롤과 푸 파이터스를 만듭니다.
1994년 밴드는 마지막 유럽투어를 나섭니다. 너바나의 마지막 공연은 독일 뮌헨으로 기록되며 3월 1일이었습니다. 3월 4일 이태리 로마에서 커트의 아내/홀의 리더 코트니 러브의 호출로 의식이 없는 커트는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이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나타나며 나머지 공연은 다 취소가 됩니다. 그러고는 재활치료에 들어가지만 1994년 4월 8일 시애틀의 자신의 집에서 권총으로 그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코베인은 자살하기 전 약물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홀의 리더 코트리 러브와의 불화 그리고 갑작스러운 성공의 압박을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Hole - Miss World
커트 코베인은 X 세대의 아이콘이라 불렸으며 2014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데이브 그롤, 크리스와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롤링스톤 메거진은 역사상 12번째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그를 꼽았으며 MTV가 꼽은 22명의 위대한 목소리중에는 7위로 그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2006년 Hit Parader는 그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메탈 싱어 중 20위에 랭크했습니다.
아직도 그의 죽음에는 여러 의문점, 그리고 루머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몇 편 있고요... 이 포스팅을 쓰면서 저도 우울해지네요. 제 인생의 최악의 시간들 제일 외로웠던 시간들을 커트코베인과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죠. 그의 음악을 듣는 것도 힘들 정도니까요. 저도 그 수많은 커트 빠중에 한 명이었고 돈을 다 털어서 그의 기타 펜더 잭스탱을 샀고 머리를 기르고 컨버스를 신고 청바지를 질질 끌고 다녔었습니다. 저의 그 속상했던 마음들을 커트코베인만큼 잘 위로해줬던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그가 편하게 있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하나도 가지지 못했던 커트코베인에게요... R.I.P 커트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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